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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는 정신 사상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서양에서는  옛날부터 줄곧 깊은 전통 안에 뿌리박고, 그 문화의 모든 면에 침투하여 한 몸이 되었다. 문학이나 미술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내재되어 있어서 그리스, 로마의 신화와 영웅 전설을 모르고서는 유럽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시 읽으며 지식이 아닌 재미와 함께 지혜를 얻는 것 같다. 


 

세계 창조는 그 주민인 인간의 흥미를 더없이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는 문제다. 고대의 이교도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성서에서 얻는  바와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세계 창조의 이야기를 전해 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땅과 바다와 하늘이 창조 되기 전에는 만물이 다 같은 모양이었는데, 우리는 이것을 카오스라고 부른다. 이 카오스는 형태 없는 혼돈의 덩어리요,  한 사물(死物)에 불과하였으나, 그 속에는 여러 사물(事物)들의 씨가 잠자고 있었다. 즉 땅과 바다와 공기가 한데 혼합되어 있었다. 땅은 고체가 아니었으며, 바다는 액체가 아니었고, 공기는 투명하지 않았다. 마침내 신과 자연이 개입하여 땅을 바다와 분리하고 하늘을 이 돌로부터 분리하여 그 혼돈을 끝나게 하였다. 그때 타오르던 부분이 가장 가벼웠기 때문에 날아올라가 하늘이 되었다. 공기는 무게와 장소에 있어서 그다음을 차지했다.
땅은 이들보다도 무거웠기 때문에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물이 제일 낮은 곳으로 내려가 육지를 뜨게 했다.

이 때 어떤 신이 - 그것이 어떤 신인지는 알 수 없지만 - 있는 힘을 다하여 육지를 정리하고 배열하였다. 그는 강과 만에 그 장소를 지정하고, 산을 일으키고 골짜기를 파고, 숲과 샘과 비옥한 논밭과 돌이 많은 벌판을 여기저기에다 배치했다. 공기가 청명하게 되자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고기는 바다를, 새는 공중을, 네발짐승은 육지를 각기 제 것으로 삼았다.
그러나 정신을 소유하고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인간은 아직 없었다. 그때 프로메테우스가 세상에 찾아왔다. 프로메테우스는 대지에 잠들어 있는 하늘의 종자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찰흙을 냇물에 적셔 빚어서 우주를 지배하는 신들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그 지위를 빼앗긴 옛 신족의 자손으로 재주가 많았다. 이 프로메테우스 와 그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는 인간을 만들거나, 인간과 그 밖의 다른 동물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을 주거나 하는 일을 위임받고 있었다.
그래서 에피메테우스는 상이한 동물들에게 용기ㆍ힘ㆍ속도ㆍ지혜 등 여러 가지 선물을 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 될 인간의 차례가 오자 에피메테우스는 이제까지 그의 자원을 몽땅 탕진하였으므로 인간에게 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당황한 그는 형인 프로 메테우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하늘로 올라가서 그의 횃불에다 태양의 이륜차에서 불을 옮겨 붙여, 그 불을  인간에게로 가지고 내려왔다. 이 선물 덕택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월등한 존재가 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 불을 사용하여 무기를 만들어 다른 동물을 정복할 수 있었고, 도구를 사용하여 토지를 경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거처를 따뜻하게 하여 기후가 다소 추운 곳에서도 살 수 있었고 나아가서는 여러 예술을 만들어 냈으며, 상거래의 수단이 되는 화폐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하늘을 다스리던 제우스가 여자를 만들어서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동생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그것은 두 형제 대해서는 하늘로부터 불을 훔쳤다는 외람된 짓을 벌 하기 위함이요, 인간에 대해서는 그 선물을 받은 죄를 벌 하기 위해서였다. 최초로 만들어진 여자는 판도라(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그녀는 하늘에서 만들어졌는데, 그녀를 완성하기 위해 각 신이 모두 약간씩 기여하였다. 아프로디테는 미를,  헤르메스는 설득력을, 그리고 아폴론은  음악을 주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판도라는 지상으로 옮겨져 에피메테우스에게 주어졌다. 그는 형인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제우스와 그의 선물을 경계하라는 주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기꺼이 아내로 맞아들였다. 에피메테우스는 한 개 상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속에는 어떤 해로운 물건이 들어있었다. 그러한 것은 인간에게 새로운 주거를 만들어 줄 때에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자 속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판도라는 이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곧 불운한 인간을 괴롭히는 무수한 재액이 그 속에로부터 멀리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판도라는 놀라 재빨리 뚜껑을 덮으려고 하였으나, 이미 상자 속에 들어 있던 것은 다 날아가고 오직 하나만이 맨 밑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희망'이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떤 재난에 처해서도 희망을 전적으로 잃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어떠한 재난도 우리를 절망할 정도로 불행하게 하지는 못 하는 것이다.

한편 판도라는 제우스의 호의로 인간을 축복하기 위하여 보내졌다는 설도 있다. 판도라는 그녀의 결혼을 축복하기 위하여 여러 신이 선사한 물건이 들어있는 상자를 받았다.
그녀가 무심코 그 상자를 열었더니 선물이 다 달아났는데, 오직 희망만은 남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앞서의 이야기보다 더 진실성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매우 값비싼 보석과 같은 것이므로, 그것이 앞서의 이야기처럼 모든 재액으로 충만되어 있는 상자 속에 들어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해서 세계에 주민이 살게 되었는데, 그 최초의 시대는 죄악이 없는 행복한 시대로서, '황금시대'라고 불렸다. 법률이라는 강제에 의하지 않고도 진리와 정의가 행해졌고, 대지는 인간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노동하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산출했다. 이때는 계절의 구분이 없이 항상 봄이었다.

다음에는 '은(銀)시대'가 왔는데, 이때 제우스는 1년을 네 계절로 나누었다. 이때부터 인간에게는 가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는 농작물도 재배하지 않으면 자라지 않았으므로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으면 안 되었고, 소는 쟁기를 끌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음에는 '청동시대'가 왔는데,  이 시대는 사람이 기질이 전 시대보다 훨씬 거친 시대였고, 걸핏하면 무기를 들고 싸우려는 시대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토록 사악하지는 않았다. 가장 무섭고 나쁜 시대는 '철(鐵) 시대'였다. 죄악이 홍수처럼 넘쳐흘렀고, 겸양과 진실과 명예는 헌신짝처럼 사라졌다. 그 대신 사기와 간지(奸智)와 폭력과 사악한 이욕이 나타났다. 이제까지는 공동으로 경작하던 땅이 분할되어 사유재산이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땅의 표면에서 산출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내부까지 파서 광물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리하여 유해한 '철'과 더욱 유해한 '금'이 산출되었다. 철과 금을 무기로 (황금의 무기란 '뇌물'을 뜻함)로 하여 전쟁이 일어났다. 손님은 친구의 집에 있어도 안 전하지 못했다. 사위와 장인, 형제와 자매, 남편과 아내는 서로 믿지 못하였다. 자식들은 재산을 상속받기 위하여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다. 가족의 사랑도 땅에 떨어졌다. 대지는 살육의 피로 물들었고 신들은 하나하나 대지를 져버렸다.

제우스는 이런 상태를 보고 크게 노하여 신들과 의 논한 후에 이 인간족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고 번갯불로 세계를 불태워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불이 일어나면 하늘도 화제를 면치 못하리라 생각하여 제우스는 그 계획을 바꾸어 억수 같은 비를 내려 그 물로써 인간들을 멸망시키기로 했다.
제우스의 동생이며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도 모든 강을 범람하게 하여 이 일을 도왔다. 그리하여 큰 홍수가 가졌는데 오직 파르나소스산 만이 물 위로 솟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일족인 데우칼리온(프로메테우스의 아들)과 그 아내 피라(에피메테우스의 딸)가 피난해 있었다. 이들은 정직하고 신을 잘 섬겼다.

제우스는 이 부부 이외엔 지상에 살아남아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것을 보고 비를 멎게 했다. 포세이돈도 강물이 본래의 그들 위치로 돌아가도록 명했다. 그러자 땅이 다시 나타났다. 그때  데우칼리온은 피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사랑하는 아내여, 생존하고 있는 유일한 여인이여, 우리는 처음에는 혈연과 결혼의 인연으로 맺어졌고, 지금은 공동의 재난에 의하여 맺어졌소. 우리가 조상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힘을 가지고, 그가 처음에 새로운 종족을 만든 바와 같이 그것을 갱생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나 이 일은 우리의 힘에 겨운 일이니 저기 있는 신전에 가서 신들에게 장차 우리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물어보기로 합시다."

그들은 신전으로 들어가 땅에 엎드려서 테미스 여신에게 어떻게 하면 멸망한 인류를 전과 같이 만들 수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신탁이 이렇게 대답했다.
"머리에 베일을 쓰고 옷을 벗고 이 신전을 떠나라. 그리고 너희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져라."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피라가 먼저 침묵을 깨뜨리고 말했다.
"저희들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 저희들은 감히 부모와 유골을 더럽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데우칼리온은 마음에 갑자기 어떤 빛이 스쳐 감을 느끼고 아내를 상냥하게 타일렀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신탁의 명령에 복종하여도 불효가 되지 않으리라고 믿소. 우리의 어머니란 대지를 말하오. 어머니의 뼈란 돌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피라여, 돌을 등 뒤로 던지면 되지 않겠소?"
그들은 머리에 베일을 쓰고 옷을 벗고 돌을 주워 뒤로 던졌다. 그러자 돌은 말랑말랑 해져서 한 형체를 이루더니 그것이 다시 마치 조각가가 대충 깎아 놓은 대리석상과 같이 점점 인간의 형체에 가까운 모양을 취하였다. 돌의 젖은 부분과 토질 부분은 살이 되고 단단한 부분은 뼈가 되었으며, 돌의 패인 부분은 그대로 혈관이 되었다. 이리하여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신들의 도움으로 곧  남자가 되고 피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었다. 이 인간족은 강건하고 유능한 일꾼이었으며 항상 자신들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해 잊지 않았다.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의 간장을 쪼는 독수리



프로메테우스는 예로부터 시인들이 즐겨 시제로 삼아왔다. 그는 인류의  벗으로 제우스가 인류에 대하여 노하였을 때 중간에 개입해 그들에게 문명과 기술을 가르친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  카우카소스 산상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이고 말았다. 독수리가 와서 그의 간장을 파먹었는데, 파먹으면 바로 또 생기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때라도 만약 자기의 박해자인 제우스의 의지에 복종하려고만 하였더라면 이 고통스러운 형벌을 종료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와 같은 짓을 하는 것을 경멸하였다. 따라서 그는 부당한 수난에 대한 영웅적인 인내와 압제에 반항하는 의지력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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